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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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조금 더 떨어져 걷는 여행-숲으로 가자 ‘광릉숲 국립수목원’

  • 작성자관리자
  • 2020-11-05 08:57:28
  • 조회수1112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도시에는 고양이나 살고, 이제 인간은 숲으로 들어가야 할 때가 아닌가? 우울한 생각이 아니고 꿈같은 공상이다. 

일은 도시에서 하더라도 사는 곳만이라도, 퇴근하고 쉬고 휴일을 보내는 곳은 우거진 그곳이 당연히 좋지 않겠나? 

깊은 숲으로 가고 싶은 안달은 계속되었다. 결국 국립수목원 예약을 하고 당장 발길을 재촉했다.  



△ 내까려두는 듯, 그러나 보호 관리되고 있는 국립수목원



▶더욱 깊어지고 있는 그곳, 국립수목원

오랜만에 가는 길이다. 기억하기에 수목원 가는 길은 우람한 고목이 잔뜩 뒤덮고 있는 좁디 좁은 왕복 이차선 도로였다. 

세월이 흘렀으니 그새 도로도 넓어지고 편안한 인도도 생겼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도로도 인도도 그대로여서 30km 제한 속도로 운행함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수목원의 진화 방향은 ‘더욱 옛날로 돌아가기’이다. 


연구와 전시를 위한 기반 시설 외에는 그냥 뇌까리는 듯 원시의 숲으로 가는 것 말이다. 진입로 역시 마찬가지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나무를 잘라내고 길을 넓힌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오랜 시간, 이토록 변하지 않은 길을 달리는 기분이 뿌듯했다.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다는 긍정의 에너지가 뿜뿜 올라온다. 그런 마음으로 국립수목원 주차장에 들어갔다. 

금요일 오후, 관람객은 적당히 적었다. 두어 시간 전 집에서 스마트폰으로 예약한 이름과 전화번호 뒷자리를 대자 입장권(1000원)을 준다. 




△ 한반도 실루엣을 닮은 수생식물원, 이름 모를 수생 꽃들. 그저 예쁘다 감탄할 뿐이다.




넓은 길을 걷는다. 수목원 사이트에서 보는 관람 지도를 보며 서서히 둘러볼 수도 있지만, 애써 그렇게 하지 않는다. 

어차피 모든 걸 볼 수는 없다. 그렇다고 설렁설렁 산보나 하고 돌아갈 수도 없다. 


그저 걷고 또 걷다 눈에 띄는 무언가가 있을 때 그곳에 잠시 머물며 배우고 익히며 즐거워하면 그만이다. 그리고 보고 싶으면 또 다시 예약하고 찾아오면 된다. 

하늘은 맑았지만 서쪽 하늘에서 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오늘 경기 북부 지역에 소나기가 쏟아질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우산도, 비옷도 가져오지 않았고,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건 아닐까 걱정도 되지 않았다. 숲에서 비 좀 맞으면 어떠랴. 

수목원의 울울창창한 나무들이 마음을 그렇게 풀어놓게 했다. 




▶전시 공간과 누리집에서 만날 수 있는 식물세밀화 



△ 광릉숲



국립수목원이 거대한 숲이지만 연구와 전시를 위한 실내 공간은 따로 있다. 

식물, 생태 전문가들이 활동하는 종합연구동, 난대식물온실, 열대식물자원연구센터, 산림생물표본관, 

그리고 우리의 산림을 보고 배울 수 있는 산림박물관 등이 그것들이다(원고 작성일 기준 9월18일 현재 모든 실내 시설은 방문객 입장이 금지된 상태이다).


시설의 특징을 대략 살펴보자. 대표적 시설인 산림박물관 외부는 우리나라 토종 돌인 화강암 등을 사용했고

실내는 광릉숲에서 확보한 잣나무, 낙엽송 등을 활용했다. 특히 현관 입구 천장은 낙엽송 간벌재를 사용한 구조물로 우리의 산림을 알뜰하게 이용한 건축물로 사랑받고 있다. 



숲의 모습을 바닥부터 하늘까지 입체적으로 볼 수 있는 숲 영상 감상실, 안동 임하댐 건설 당시 수몰 지구에서 채굴한 

5개의 나무 줄기를 합쳐 하나의 나무로 연출한 대형 느티나무, 건축의 꿈이 저절로 일어나는 국내외 주요 목재 표본 등 굵직한 전시물들을 감상할 수 있다.  






△ 난대식물온실, 입장은 안되는 상황이지만 온실 안에서는 여전히 식물 관리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난대식물온실은 다도해, 한려 등 해상국립공원과 기타 섬 지역, 그리고 해안에서 자생하는 온대남부식물과 난대식물들을 보존하는 온실이다. 

국내 자생 상록활엽수인 팔손이, 돈나무, 유자나무 등과 외국에서 온 커피나무, 병솔꽃나무 등이 이곳에서 자라고 있다. 



또한 식충식물인 네펜데스, 자란, 새우란 등 320종의 관련 식물도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 

이 밖의 시설에서는 야생화, 장수하늘소, 식물표본, 이끼, 종자, DMZ 자생식물 등 세밀한 연구는 물론, 

유용한 식물 품종 개발과 대량 증식 같은 산업적 측면의 연구 등도 이뤄지고 있다.


사적인 취향이지만, 식물세밀화 작업을 국립수목원에서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도 놀랍고 반갑다. 

식물세밀화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형태와 색체가 변질되는 실제 식물 표본에 비해 거의 영구적인 보전이 가능하고, 

일단 그 솜씨와 결과물이 예뻐서 누구나 좋아하는 예술 장르로 자리잡은 상태다. 



국립수목원 누리집 연구 카테고리의 식물세밀화 페이지에 들어가면 세밀화 전문 화가들이 실물과 똑같이 그린 정밀화 812점을 감상할 수 있고 이미지 출력도 가능하다. 

황홀한 작품들이니 만큼 관람자 모두가 저작권을 존중해야 하며, 법적인 보호도 받고 있다. 출입이 제한되고 있지만, 

난대식물온실, 산림생물표본관 등 모든 실내 전시 시설들 안에서는 지금도 보건 규칙 안에서 식물 관리와 연구가 뜨겁게 이뤄지고 있다. 

오늘도 우리의 숲을 위해 열일 중인 전문가들을 향해 박수를 보내게 된다.


수목원의 연구 분야 가운데 대중의 피부에 와 닿는 것은 역시 수목원을 품고 있는 광릉숲이다.

 국립수목원은 광릉숲의 공식 명칭이지만, 광릉숲 전체 면적 244.65㎢ 대비, 전체 면적의 3%에 해당하는 7.55㎢만 개방한 것만 보면 극히 일부에 해당된다. 



하지만 국립수목원이 하는 일이 이 깊고 넓은 광릉숲뿐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 식물 분포와 생태계를 연구하고 관리하며

 그 일부를 시민에게 개방하고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곳이 우리 몸의 허파만큼 소중한 곳임은 분명하다. 

광릉숲은 흔히 알고 있는 국립수목원 근처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광주산맥 지맥의 일부인 죽엽산, 소리봉, 물푸레봉, 운학산, 천참산 등이 모두 포함된다.


국립수목원이라는 정식 명칭이 있지만, 이곳은 오랜 세월 광릉수목원 또는 ‘광능내’로 불렸고, 지금도 그렇게 부르는 중장년들이 적지 않다. 

국립수목원이 있는 광릉숲의 출발은 물론 원시 고대 때였을 것이다. 그곳이 기록되고 보전되기 시작한 것은 조선 7대 왕인 세조가 죽은 직후부터였다. 

세종의 아들 세조는 쿠데타로 왕이 되었고, 끝내 조카인 단종을 죽음으로 몰아낸 잔인한 인물이다. 



왕권을 잡은 그는 새로운 제도를 통해 선정을 베풀었고 그 성과 또한 작지 않았지만 후대 왕들과 사관들은 그를 성군으로 모시지 않았다. 

세조는 52세의 나이로 죽었는데, 무덤은 생전에 세조가 사냥을 즐겨 했다는 바로 이곳 남양주(그때는 양주) 지역에 조성되었다. 

훗날 그의 아내 정희왕후 윤씨가 죽자 역시 광릉에 묻었으나 합장이 아닌 왕과 왕비를 서로 다른 언덕에 모시고 능의 중간에 한 채의 정자각을 세우는 동원이강릉 형식을 취했다. 



당시 조선왕실은 광릉을 중심으로 지름 6km 지역을 왕실림인 광릉 부속림으로 지정해서 관리해왔다. 

당시 양주 일대가 한양의 배후 지역이자 왕가의 사냥터, 왕능 조성지로 인기를 끌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광릉 일대를 왕실림으로 보호한 것은 후손의 시선으로 볼 때 대단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광릉숲은 관리가 낳은 기적의 산림이다. 철저한 보살핌이 한몫했지만, 왕실림 지정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단 한 차례도 화제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게 그것이다. 

광릉숲의 정부 관리는 조선이 사라질 때까지 지속되었고, 일제 강점기 초창기인 1911년에도 이곳이 ‘갑종요존예정임야’ 

즉, 최고의 산림이 되도록 보호 관리해야 할 숲으로 선정되었다. 해방 이후에도 광릉숲은 철저하게 보호되었으며 2010년 6월에는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되었다. 


한반도 최대의 온대숲이 이제 세계가 함께 관심을 갖고 보전하는 지구의 숲이 된 것이다. 

이 대단한 숲 가운데 우리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은 국립수목원 개방 지역, 광릉, 봉선사, 그리고 최근에 개통한 여덟 개 코스의 ‘유네스코 국립수목원길’ 정도이다.


국립수목원 여행 코스

▶유네스코 국립수목원길 



△ 광릉숲 둘레길 약도(제공©광릉숲 생물권보전지역 관리센터)



국립수목원을 걷다 보면 근처에 사는 포천시와 남양주시, 의정부시 시민들이 슬쩍 부러워진다. 

광릉숲이 대한민국의 숲이긴 하지만, 주변 지역 시민들에게는 엄청 깊은 정원 내지는 뒷동산 아니겠는가. 또 하나 부러운 것이 유네스코 국립수목원길이다. 


이곳이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조성된 숲길이다. 모두 8개의 코스로 이어져 있는 이 길은 그야말로 시민들의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에 결정적 도움이 되고, 

맑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길잡이가 되기에 충분하다. 각 지자체마다 지역 환경에 어울리는 둘레길들이 있으니 이곳 유네스코 국립수목원길이야말로 

순전히 포천시, 의정부시, 남양주시 사람들만의 소중한 동선 아니겠는가.




▶전나무숲길



△ 전나무숲길에서 만난 포레스트 라운지 체어에 누워보고싶다, 산책기로 인기 높은 육림호 호반길



수목원 곳곳에는 침엽수, 약용식물, 덩굴식물, 무궁화, 백합, 양치식물 등 주제가 있는 전시원이 20여 곳 남짓하다. 

오늘 여행에서 제일 기대되는 곳은 역시 전나무숲길이었다. 이곳 전나무숲길은 강원도 월정사 전나무숲의 자식뻘 되는 존재다. 


일제 시대 때 조선총독부가 광릉숲을 갑종요존예정임야로 지정한 뒤 실제로 체계적인 관리가 이뤄졌는데, 

그중 하나가 월정사 전나무 종자를 증식해서 이곳에 조림한 사업이었다. 


그것이 1927년의 일이었으니, 계산해 보면 월정사 전나무의 자식들인 이곳의 전나무들 나이가 최고 90세 안짝이라는 결과가 나온다. 

월정사 전나무숲길을 좋아하지만 당장 갈 수 없는 수도권 사람에게 이곳 전나무숲길은 매우 훌륭한, 월정사 못지 않은 산책로가 되기에 충분하다. 


실제로 우리나라 3대 전나무 숲길(평창 오대산 월정사, 부안 능가산 내소사, 국립수목원) 중 한 곳인 이 길을 걸어보니 마치 명상의 세계로 빠져드는 느낌이다. 

또한 수십 년 만에 돌아와 안긴 어머니 품 같은 안온함도 들었다. 특별한 시설 없이 그저 양쪽에 키 큰 전나무들이 잔뜩 서 있는 길을 걷는데 무슨 말이 필요할까. 


하지만 전나무숲길 중간에서 만난 ‘누워서 전나무와 하늘 보는 곳’에 이르자 마음이 몹시 두근거렸다.

 이곳에는 바닷가에서나 볼 수 있는 비치의자, 숲에 맞춰 말하자면 ‘포레스트 라운지 체어’에 누워 높이 솟은 전나무와 그 위로 펼쳐진 하늘을 보며 편히 쉴 수 있는 곳이다. 


라운지체어가 달랑 세 개밖에 없고, 누워 있던 어르신들이 너무 행복한 표정으로 웃고 계셔서 ‘나도 좀 누워 볼 수 있을까요?’라는 말은커녕, 감히 헛기침 소리도 낼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전나무 바로 아래에 있는 폭 좁은 벤치에 잠시 누워보았는데, 역시 청량한 가을 바람이 코 끝을 건드리며 온 몸으로 숲의 모든 것이 스며드는 느낌이다.


전나무숲길은 광릉숲 공식 개방 지역이 끝나는 곳까지 이어진 후 끝났다.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고 소나기 일기예보가 실제로 나타날 조짐도 보였다. 더 깊은 광릉숲으로 들어가는 산림도로 입구에 굳게 닫힌 철문은 조금 뒤 비를 홀딱 맞은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아쉬움의 잔영으로 남아 있었다.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길, 육림호에 잠깐 서 있었다. 육림호는 당초 숲이 선사하는 물의 양을 높이고 

그것을 이용해 댐과 발전의 모델을 만들 목적으로 조성되었으나 지금은 인공적인 기능을 정지시키고 오직 호수와 산책로로만 활용되고 있다. 


덩치 큰 사람의 팔뚝만 한 금잉어들이 유유히 헤엄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호반 산책길은 수목원 방문객들에게 전나무숲길과 더불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호수와 숲과 하늘 아래를 걷는 그 차분하거나 경쾌한 느낌은 그 길을 걷지 않고는 알 도리가 없다. 

또한 국립수목원, 광릉숲에서 수많은 나무와 꽃을 보고 오솔길을 걸을 때 온 몸의 세포로 스며드는 ‘살아있음’의 느낌표들도 그 길을 걷지 않고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인생 체험이다.



Info 국립수목원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광릉수목원로 415 

입장 시간 10월 09:00~17:00(18:00까지 개방), 11~3월 09:00~16:00(17:00까지 개방), 

수요일 16:00까지 개방 *예약제(인원 초과 시 예약 불가능)(휴무일 일, 월요일, 명절연휴, 1월1일)



▶광릉


△ 광릉봉분, 왕비릉



조선 7대 왕 세조와 그의 부인 정희왕후의 능이다. 오늘의 광릉숲을 있게 한 결정적 역할을 한 왕릉이다. 

세조는 즉위도 무섭고 요상하고 파격적으로 했지만, 죽을 때에도 남다른 유언을 남겼다. 

특히 무덤과 관련된 일화는 세조의 삶과 번뇌를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52세의 나이로 죽은 세조는 죽기 직전, ‘내가 죽으면 속히 썩어야 하니 석실과 석곽을 사용하지 말 것이며 병풍석을 세우지 말라’고 했다. 

유지를 받은 왕실과 조정은 세조의 무덤을 석실 대신 관을 석회로 뒤덮는 방식인 회석 구조로 처리했다. 

능의 조성이 간소화되다 보니 인원, 비용도 줄어들었고, 궁극적으로 세조의 바람대로 시신이 빠른 시간에 자연화되는 효과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세조의 광릉이 조성되면서 그 일대를 왕실숲으로 지정해서 철저하게 관리하기 시작한 것은 오늘의 후손에게 커다란 유산이 되었다. 

세조는 인생 후반기에 왕위를 찬탈했던 과거를 뉘우치며 불교에 귀의, 세조 11년 1465년에 ‘원각사’를 창건했다.


 종로2가 탑골공원에 세운 원각사는 한동안 세조의 해탈에 도움을 주었고, 조선 시대 때 왕이 창건한 사찰로 주목받았으나, 

훗날 연산군이 스님들을 모두 몰아내고 연방원이라는 이름의 기생집으로 만들어 버려 사라지고 말았다. 


지금 원각사지에 남은 것은 유리 보호각 속의 원각사지10층석탑뿐이다. 

그 원각사도, 세조도, 단종도 모두 사라진 지금, 이제 광릉숲만이 지나간 세월과 오늘의 시간, 그리고 다가올 내일과 함께 자연을 이야기하고 있다. 











*출처 : 매일경제 https://www.mk.co.kr/news/culture/view/2020/10/1058075/

글 이영근 사진 이영근 / 문화재청 일러스트 포토파크 / 광릉(사진제공 문화재청)